이위와 마오리 왕

2023. 5. 7. 00:59잡다

이위(iwi)는 마오리족의 부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보다 작은 씨족 단위는 하푸(hapū)라고 한다.

 

폴리네시아 계열의 집단인 마오리족은 1천년대 초기에 뉴질랜드 북섬으로 이주해왔다. 폴리네시아인들의 조상은 대만 섬에서 출발하여 필리핀 등을 거쳤다. 이들은 항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동진하였는데, 기원후 13세기 무렵이면 뉴질랜드 북섬까지 왔다. 다른 폴리네시아 지역들이 태평양의 작은 섬인데 비해 뉴질랜드는 규모가 컸기 때문에, 현재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아 계열 집단 중에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이 유럽인의 등장 이전에 호주에까지 정착 규모를 키웠다면 역사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호주는 동식물을 길들이기 가장 어려운 편인 지역이었지만, 폴리네시아인들은 항해하던 시절부터 농작물과 가축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으니까.

 

현재 뉴질랜드 인구에서 마오리족은 77만 정도를 차지한다. 그 외에 태평양 섬 출신 폴리네시아인이 한 10만은 있다. 마오리족이라 뭉뚱그리게 되었지만 유럽인이 오기 전에 이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는 등 동족 의식이 없었다. 유럽인들이 등장한 뒤에도 일부는 영국과 거래하여 총기를 가족 다른 부족을 공격했다. 부족들도 영국과 동맹을 맺는 곳도 있고 싸우는 곳도 있었다. 이런 부족 의식은 현대화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마오리라는 공통 정체성이 생긴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편이다.

 

 

가장 큰 이위는 응가푸히(Ngāpuhi)로 16.5만 명 정도이다. 2018년 인구 조사에 따른 것이다.

 

두번째로 응가티 포로우(Ngāti Porou)가 있으며 9.2만 정도이다. 이어서 카이 타후(Kāi Tahu)가 7.4만, 응가티 카훈구누(Ngāti Kahungunu)가 6.3만, 와이카토(Waikato)가 5.1만 정도이다. 

 

마오리 왕이라는 사회적 직책이 있다. 정식으로 작위나 왕위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나,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오리 부족 중 첫번째로 큰 응가푸히와 두번째로 큰 응가티 포로우는 이 마오리 왕 창설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오리 왕이 갖는 상징성 때문인지 주요 행사 있으면 꾸준히 부르고 있다.

 

찰스 3세와 만난 현재 마오리 왕 투헤이티아 파키(Tūheitia Paki).

 

투롱고 하우스(Turongo House0라고 궁도 있다.

 

  마오리 왕 배우자
1대

포타타우 테 웨로웨로
Pōtatau Te Wherowhero
Whakaawi
Raharaha
Waiata
Ngawaero
2대

타우히아오
Tāwhiao
Rangiaho
Hera
Aotea
3대

마후타 타우히아오
Mahuta Tāwhiao
Te Marae Te Kerei
4대

테 라타
Te Rata
Te Uranga
5대

고로키 마후타
Korokī Mahuta
Te Atairangikaahu Hērangi
6대

테 아타이란지코
Te Atairangikaahu
Whatumoana Paki
7대

투헤이티아 파키
Tūheitia Paki
Te Atawhai

 

 

1대 마오리 왕은 1860년에 세상을 떠났다. 1858년에 처음 마오리 왕 직위를 설치하고 2년 뒤의 일이다. 1841년에 총독이 이미 포타타우 테 웨로웨로가 유력한 부족장이라고 런던에 보고를 보냈다. 포타타우는 재력으로 유명한 인물이었고, 그때문에 마오리족의 여러 부족장에게 왕으로 권유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고사했으나 1년의 설득 끝에 왕위를 받아들였다.

 

2대 마오리 왕인 타후이아오. 1822년에 태어나 18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초상화 등으로 보면 마오리의 얼굴 문신 관습을 유지한 마지막 왕이다. 1863년에 영국은 항복할 것을 요구했고 전쟁 끝에 50만 헥타르의 땅을 뺏겼다. 1884년에는 영국을 방문하였다.

 

3대 마오리 왕이었던 마후타 타후이아오. 가장 우측의 인물이다. 1855년생으로 1912년에 세상을 떠났다.

 

가장 좌측의 인물이 4대 마오리 왕이었던 테 라타. 1884년에 태어나 1933년에 세상을 떠났다. 재위기간은 1912년부터 1933년이었다. 1차 대전 당시 마오리인의 참전에 소극적이었고 측근들은 반대하였다.

 

테 라타는 몸이 좋지 않아서, 1883년생인 사촌누나인 테 푸에아 헤랑기(Te Puea Hērangi)가 대신 일을 많이 하였다. 테 푸에아는 3대 마오리 왕인 마후아타의 누나인 티아후이아(Tiahuia)의 딸이었다. 아버지는 테 타후나 헤랑기(Te Tahuna Hērangi)였다. 헤랑기의 아버지이자, 테 푸에아 공주의 친할아버지는 영국인 측량사인 윌리엄 시랭크(William Nicholas Searancke, 1817-1904)였다.

 

5대 마오리 왕이었던 고로키 마후타. 1906년에 태어나 1966년에 세상을 떠났다. 임기는 1933년부터 1966년까지였다. 당고모인 테 푸에아는 여전히 영향력을 미쳐서 자신의 조카인 테 아타이란지코(Te Atairangikaahu)를 결혼시켰다. 테 아타이란지코는 테 푸에아의 형제인 와나코레 헤랑기(Wanakore Hērangi)의 딸이었다. 코로키 마후타에겐 6촌 사이가 되었다.

 

1953년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했을 때 안내하는 고로키. 걷고 있는 4명을 보면, 가장 앞쪽이 코로키의 딸인 아타이란지코이며 엘리자베스 2세, 필립 공, 코로키의 순이다. 

 

6대 마오리 왕을 지낸 아타이란지코. 1931년생이며 2006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릴 적엔 피키 공주라고 불렸다. 왕으로서 이름이 어머니의 이름과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6촌 관계였다.

 

아타이란지코의 중년기의 모습이다.

 

노년기의 아타이란지코.

 

현재 마오리 왕인 투헤이티아 파키. 1955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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