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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분리주의 정부가 2024년 1월 1일에 해체하기로 하였다. 지난 주에 아제르바이잔에 이 월경지는 30년만에 점령되었다. 6만 5천 이상의 아르메니아계가 피난하였고, 이는 이 지역의 인구 절반을 넘는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97.56달러를 넘었다. 1년만의 최고치이다. 미국에 원유 재고가 예상보다 적으면서 유가가 올랐다. 6월 이래 30%가 올랐다. 독일의 연간 인플레이션이 9월에 4.3%로 둔화됐다. 8월엔 6.4%였다. 미국 연방 공무원이 일요일부터 셧다운으로 급여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약 2백만의 연방 공무원과 130만의 현역군인이 해당한다. 대만이 16억 달러 이상을 들여 자체 제작한 잠수함을 공개했다. 2025년부터 취역 예정이다. 중국의 견제로 대만은 잠수함..
2023.09.29 -
2023-09-28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5만 명이 넘는 아르메니아계가 아르메니아로 피난하였다. 지역의 분리주의 지도자인 루벤 바르다냔은 체포되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이 지역을 회복하기 위해 30년 동안 192명의 병사가 전사했다고 했다. 7월에 월북한 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이 북한에서 추방되었다. 킹은 한국에서 2개월 동안 폭행 혐의로 있다가 월북하였다. 독일이 폴란드와 체코 방면 국경의 검문을 강화한다. 난민 등의 유입으로 집권 사민당은 압박을 받고 있고, 극우 반이민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에 지지율이 지고 있다. 중국의 부동산 업체인 에버그란데의 의장인 허가인이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 정부의 승인 없이 출국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알려지고 있다. 에버그란데는 8월에 미국에서 파산을 신고하였다..
2023.09.28 -
방위성 발령(대령급) 2023-09-22
방위대학교 교수에 임명 (방위대학교 방위학교육학군) 1등해좌 마츠오 아키나리(松尾聡成) 해상자위대 도쿄업무대에 배속 (방위대학교 교수) 1등해좌 오우치 켄지(大内研治) 2023년 9월 22일 부 출처: https://www.mod.go.jp/j/press/jinji/2023/0922a.pdf 오우치란 성씨의 일부 구성원은 백제의 후손임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오우치를 가리키는 대내전(大內殿)으로 검색을 하면 꽤 여러 언급이 나온다. 백제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조선 국왕의 신하로 지내며 약간의 토지를 얻기를 원했다. 오우치 일가에서는 지금의 전주인 완산 일대의 땅을 하사받기를 원했다. 실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러자 포기하고는 백제의 후손임을 문서로 입증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세종실록 40권, 세..
2023.09.25 -
방위성 발령(대령급) 2023-09-19
제1잠수함대사령부 근무를 명함 (오미나토지방총감부 방위부장) 1등해좌 사시 미치로(佐志倫郎) 오미나토지방총감부 방위부장 근무를 명함 (오미나토지방총감부 방위부) 1등해좌 후쿠야마 타카시(福山崇) 해상자위대간부학교 근무를 명함 (정보본부) 1등해좌 이와나미 토시유키(岩波俊行) 2023년 9월 19일 부 출처: https://www.mod.go.jp/j/press/jinji/2023/0919a.pdf
2023.09.21 -
이위와 마오리 왕
이위(iwi)는 마오리족의 부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보다 작은 씨족 단위는 하푸(hapū)라고 한다. 폴리네시아 계열의 집단인 마오리족은 1천년대 초기에 뉴질랜드 북섬으로 이주해왔다. 폴리네시아인들의 조상은 대만 섬에서 출발하여 필리핀 등을 거쳤다. 이들은 항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동진하였는데, 기원후 13세기 무렵이면 뉴질랜드 북섬까지 왔다. 다른 폴리네시아 지역들이 태평양의 작은 섬인데 비해 뉴질랜드는 규모가 컸기 때문에, 현재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아 계열 집단 중에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이 유럽인의 등장 이전에 호주에까지 정착 규모를 키웠다면 역사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호주는 동식물을 길들이기 가장 어려운 편인 지역이었지만, 폴리네시아인들은 항해하던 시절부터 농작물과 가축을 ..
2023.05.07 -
일본 경찰예비대&보안대 시절 사진(1950-1954)
사진은 구글에서 적당히 검색한 것이다. 6.25 전쟁으로 일본 홋카이도 등에 주둔 중이던 미군 사단이 한반도로 전개되었다. 이로 인해 치안 공백이 생기자 더글라스 맥아더는 당시 일본 총리인 요시다 시게루에게 7만 5천 명 정도의 치안유지경찰을 창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면서 생겨난 것이 경찰예비대이다. 1950년 8월 23일에 미군 고문이 참관하여 경찰예비대 1기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카빈 소총을 제식으로 사용했고, 지프 차량 등이 제공되어서 정말 경무장 위주의 경찰 예비 병력 수준이었다. 폭동 진압 훈련 등 경찰에 가까운 훈련을 받았다. 이때 맥아더의 부하인 찰스 윌러비 소장은 일본군 대령을 지낸 핫토리 다쿠시로에게 400명 정도의 일본군 장교 출신 명부를 준비하도록 하게 하였다. 핫토리는 ..
2023.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