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0. 14:24ㆍ세계의군대
그레나다 개관
그레나다는 현재 군대가 없는 나라다.
그레나다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섬나라다. 면적은 344제곱킬로미터로 서울의 절반 정도이고, 인구는 2024년 기준 11.4만 정도이다. 수도는 세인트 조지다. 인구의 80% 이상이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다. 13% 정도는 혼혈이며 인도계가 2% 정도이다. 종교적으로 인구의 96%가 기독교이다. 개신교가 약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며 가톨릭이 40% 정도 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만큼 소수의 힌두교 신도가 있고, 근처인 자메이카에서 발원한 라스타파리 신도도 있다.
그레나다군의 역사
남미 출신의 선주민이 살던 땅에 1498년 콜럼버스가 왔다. 17세기부터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했고, 1763년에 파리 조약으로 영국에 넘어갔다. 영국의 식민통치는 1974년까지 계속 되었다.
1974년 2월 7일에 Eric Gairy(1922-1997)의 지도 하에 독립이 이뤄졌다. 게어리는 그레나다의 초대 총리가 되었다. 그레나다는 독립 후에도 영국 국왕을 그레나다 국왕으로 두었다. 게어리는 비밀경찰 등을 동원해 독재 정치를 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성향의 New Jewel Movement가 등장하고, Maurice Bishop(1944-1983)이 게어리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해 총리가 되었다. 비숍은 네덜란드령인 아루바 섬 태생으로 그레나다로 이주해왔다.
정권이 교체되며 인민혁명군(People's Revolutionary Army)이 1979년에 생겨났다. 병력 규모는 1,200명 수준이었다. 원래 PRA는 NJM의 당군으로 1973년에 생겼다. 이후 12명의 장교(남 11, 여 1)가 가이아나군에 파견되어 훈련을 받았다. 이 장교들은 "12사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들은 게릴라 전술로 1979년에 에릭 게어리 정부를 전복하였다.
이렇게 정권을 차지한 모리스 비숍은 쿠데타의 동력인 PRA에 의해 1983년 10월 13일에 체포되었다. 부총리인 Bernard Coard가 공산권과의 관계 강화를 원했던 것과 달리 비숍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원해 노선 차이가 있었던 탓으로 추정된다. 이틀 뒤인 15일에 비숍이 총살로 처형되었다. 코어드를 지지하던 사령관 Hudson Austin이 군권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언하였다. 비숍의 지지자들과 코어드의 지지자들이 서로 분쟁을 벌였다.
이 상황에 미군은 소련과 쿠바가 그레나다에 내정 간섭을 하고 있으며 자국민을 보호한단 이유로 7,600명의 병력을 보내 그레나다를 침공하였다. 이 사건이 "그레나다 침공"이다. 주변의 카리브해 국가에서도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350명이 파견되었다.
당시 미군과 교전했던 PRA의 규모는 1,500명 정도였다. 쿠바군도 700명 정도가 그레나다를 지원하기 위해 주둔하였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미군의 승리로 침공이 끝났다. 이후 PRA는 해체하였다. 그레나다는 그 뒤로 군대 미보유국으로 남게 되었다.
현황
현재는 왕립 그레나다 경찰(Royal Grenada Police Force)과 해안경비대(Coast Guard of Grenada) 같은 준군사조직만이 존재한다. 일부 경찰 특수부대(Special Service Unit)가 지역 안보 체계에 참여하고 있다.
그레나다 경찰
경찰의 인력은 940명 정도이다.
그레나다 경찰의 특수부대. 군인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미군에게 훈련을 받고 있다.
그레나다 해안경비대
마찬가지로 미군의 지원을 받고 운영되고 있다. 총 인원 60명에 선박도 4척 정도로 한국군의 중대 보다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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